자클린의 눈물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닮았다는 악기 첼로에 얽힌 아름답고도 마음 속 깊은 심연을 건드리는 곡이 있습니다. 지난 주 어느 날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함께 핸들을 잡고 있을 때 그 유명한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첼로곡이 흐르고 있습니다. 평소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면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날은 그 곡을 듣는 중 지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있었던 유람선 침몰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분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중에 6살 난 손녀딸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함께 폐에 들어차는 물과 함께 질식하여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가 자꾸만 생각이 났습니다. 할머니 품 안에서 숨을 쉴 수 없어 괴로워하며 발버둥치는 그 사랑하는 손녀딸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절망 속에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손녀딸을 끌어안아 주는 것 밖에 없었을 그 절박함 속에 사랑의 위대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클린의 눈물’은 유명한 첼리스트이기도 한 작곡가 오펜바흐의 유작 중의 하나입니다. 그의 생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첼로 곡이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났을 때 즈음 독일의 첼리스트 토마스 미푸네 베르너가 오펜바흐의 악보를 발견하게 되고 연주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곡입니다. 그런데 이 곡이 오펜바흐는 제목도 붙이지 못한 유작인데 곡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경위가 안쓰럽습니다. 베르너가 오펜바흐의 이 곡을 발견하고 연주하던 때에 또 다른 세계적인 영국 출신 여성 첼리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자클린 뒤 프레‘입니다. 첼로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자클린을 평하기를 “내가 이룬 업적과 동등한, 아니 더 큰 것을 이룰 연주자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16세에 런던에서 데뷔하여 영국 BBC교향악단과 함께 미국투어를 하면서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며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6년 뒤 젊은 나이의 결혼과 동시에 몸에 치명적인 병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발성 뇌척수 경화증’이라는 당시 의학으로는 완치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첼로의 활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고 시력을 점점 잃어갔으며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다가 결국 1987년 10월에 4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독일 첼리스트 베르너가 이 자크 오펜바흐의 유작을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그녀의 이름을 붙여 이 곡을 그녀에게 헌사를 하여 오펜바흐의 곡에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그 곡의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샘을 자극하기도하지만 그 곡에 붙여진 이름에 담긴 사연은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물론 우연이겠지만 자클린이 세상을 떠나던 그 해 그 달에 저는 이 안성 땅에 교목으로 부임을 했습니다. 낯설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광야 같은 안성 땅에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내려오던 그 때에 지구촌 반대편에서는 천재 첼리스트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 자클린이 병 앞에 무릎을 꿇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첼로 곡을 들을 때마다 광야 같은 이 안성 캠퍼스에 부임하던 때의 생각이 나고 지금까지 걸어 온 32년의 삶이 영화 필름처럼 흘러갑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사 유람선 사고가 나 손녀딸을 품에 안고 몸부림을 치며 죽어가던 그 시간에 우리는 대부분 점심식사를 하고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서로 연관성은 없지만 살아있는 모두에게는 그 모든 일들이 의미 있는 일들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호흡이 다하는 날까지 말입니다. 이렇게 숨쉬고 살아있음이 은혜입니다. 지금도 창밖으로는 태풍의 영향인지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소란스럽지만 인터넷으로라도 ‘자클린의 눈물’을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첼로 천재도 죽음이 삼킨 것처럼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그날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언제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살아야하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