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선고

29일(목)에 지난 수년간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몇 명의 피고인들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 선고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전임 대통령으로 권력의 꼭짓점에 있었던 분이고 또 다른 한 명은 한국 최고의 기업의 수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 동안 두 분에 대한 하급재판에서 1심과 2심이 상반되거나 형량의 차이가 나는 결과물을 낸 것은, 1심을 맡은 재판관이나 2심을 맡은 재판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안이 워낙 방대하고 복잡하며 재판의 결과가 사회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기에 법리 판단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2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이 상고하면서 대법원의 재판까지 이르게 되어 수개월 동안의 긴 장고 끝에 지난 29일에 선고를 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선고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대법관들이 대체로 합의 한 내용을 먼저 대법원장이 읽고 나머지 합의에 이르지 못한 내용들을 다른 대법관들이 여러 법률용어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읽었습니다. 어느 정도 법에 대한 지식이 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집중하여 이해하려 해도 쉽지 않은 내용들이 가득합니다. 법관들이 선고를 하면서 계속 반복하는 말이 하나있습니다. ‘헌법 형법 000조 00항 00호에 의하여‘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세밀하고 치밀한 헌법 조항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그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구가 늘어가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예전에 없었던 신종범죄가 늘어가면서 법도 더불어 더욱 세밀해지고 정교해 지면서 그렇게 늘어갔을 겁니다. 예상하기로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행위라 할지라도 현행법으로 단죄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법을 다루는 직업을 가질 분들이 공부할 양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법도 결국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 이와 같은 정교한 법망을 피하여 더 고도의 지능적 범죄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9일 대한민국 최고 재판권한을 갖고 있는 대법원의 선고하는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대법관들은 선고하는 중에 계속 헌법을 기준으로 법리 판단한 것을 선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심판하실 때 어떤 모습일까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이시기에 헌법이 기준이 아니라 심판하시는 하나님 자신이 곧 기준이시기에 선고하는 말이 다를 것 같아 보입니다. 아마 “내가 너를 판단하노니”라는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감찰하여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평생의 삶을 심판의 자리에 세워놓으신다면 우리 가운데 그 하나님의 정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두려운 마음뿐입니다. 적나라하게 하나님 앞에 드러날 우리들의 모습이 어떨까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합니다. 계시록말씀에 기록된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을 피하고 싶은 간절함이 사실 일 것 같습니다. 계6:16입니다.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우면 차라리 바위에 깔려 죽는 것이 낫겠다는 절망의 탄식입니다. 이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온 몸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죄’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능력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했습니다. 예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그 두려운 심판 자리에 서야했습니다. 예수 십자가가 우리에게 최고의 복음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정죄에서 살려내시려고 발가벗기움을 당하시고 심장을 터트려 죽음에 이르신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지난 29일에 더욱 빛나는 날이었습니다. 이런 장면을 지켜보아야 하는 우울함과 함께 주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