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할 때 강함되시는

작년 아내와 함께 몇 개월 간격으로 병원 수술대에 누웠었습니다. 그간 주의 은혜로 건강하게 살아왔기에 삶에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수없이 강단에서 설교했던 대로 우리의 삶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주의 은혜로 수술 이후에 둘 다 비교적 이전과 다름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반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을 때마다 걱정까지는 아니지만 긴장을 합니다. 주위에 있는 분들 가운데 가끔 낙제점을 받은 분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의학적으로 5년은 넘겨야 하는데 이제 겨우 일 년을 넘겼으니 정기검진은 주 앞에 간절함을 일깨우는 시간입니다.

8월 중순에 예정되었던 아내의 정기검진결과를 듣는 외래진료가 한 주 연기 되었습니다. 무슨 연고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작은 변화에도 촉각을 세우게 됩니다. 병원에서 아내에게 연기의 사연을 문자로 알려왔습니다. 아내를 처음부터 진료를 하고 수술을 한 담당 주치의가 병가를 냈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래서 주치의가 바뀌었다고 알려주는 겁니다.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담당 주치의는 지금 병원으로 오기 전, 인천에 있는 큰 병원에서 담당과 센터장을 맡고 있을 때에 본인이 수술대 위에 누워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진료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한마디 한마디에 환자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흡사 환자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 본인이 환자의 자리에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주치의가 다시 병가를 냈다는 소식에 남 일로 들리지 않는 겁니다. 주치의가 이렇게 병가를 내면 그 분 손에 달린 수많은 환자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에 순간 난감함이 밀려옵니다.

‘작년 교인들의 마음이 이랬겠구나’하는 생각에,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교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는데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원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난감함을 교우들에게 안기지 않으려면 아프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물론 이것도 내 원함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주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 아내가 바뀐 주치의를 만나러 병원에 가던 날, 아내의 결과에 대한 것과 함께 주치의가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속히 건강을 회복하고 주께서 그에게 주신 그 재능으로 많은 아픈 이들의 상처를 도려내고 치유하는 따뜻한 웃음을 잃지 않는 의사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끔 아내의 동기 의사들 가운데 갑자기 세상을 떠난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병의 정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 자신에게 그 병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차라리 보통사람들처럼 병의 정체를 몰랐더라면 막연하게나마 희망이라도 가졌을 터인데, 너무도 잘 알기에 그 작은 희망조차 갖지 못한 채 불씨가 꺼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희망이 병과 싸우는데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는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병의 예후를 거의 아는 의사들이 아프면 희망의 불씨를 살리지 못하는 치명적인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아내가 또 6개월을 건강하게 잘 달려왔습니다. 눈물 나게 주 앞에 감사할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수술대 위에 누울 정도로 아픈 건 분명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반년 마다 아내를 향한 이런 간절함은 아프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나름 행복입니다. “괜찮대. 아무 이상 없대”라는 아내의 목소리는 반년마다 듣는 최고의 사랑고백입니다. 시편 말씀 한절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시119:71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율례와 더불어 아내를 향한 사랑을 배워갑니다. 그 소중함을 배워갑니다. 역시 우리 주님은 우리들이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 맞습니다. 일부러 아프기를 기도하지 말아야 되지만, 아픔이 올 때에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사랑도 함께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 사랑 의지하여 모든 고난과 아픔을 넉넉히 이겨내시길 소망해 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