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고요?

며칠 전 신문에 제법 큰 제목과 함께 실린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일반인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제대로 번역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오래 전 강의시간에 필요하여 사 놓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다윈의 ’종의 기원’은 생물학을 전공한 전문가가 아니면 도무지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어려운 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진화론을 주장하는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진화론의 옳고 그름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은 일반인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생명들에 대하여 그 원인과 이유를 밝혀주는 분명한 지식이 없을 때 진화론을 유일한 진리(?)인양 받아드리고 있는데 과학적으로 살펴 신빙성을 확인하고 진화론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들이 신 존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믿는 것이 아닌 것처럼 진화론을 따르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윈의 진화론을 과학적으로 확인하여 지지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진화론 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에 흡사 어떤 신을 따르는 종교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1859년 다윈은 ‘종의 기원’의 초판을 내고 13년 동안 6번의 개정판을 냈습니다. ‘종의 기원’ 전반부는 ‘비둘기 교배’이야기를 길게 쓰고 있습니다. 다윈은 당시 유행하던 ‘비둘기 육종’을 예로 들면서 육종사의 인위적인 선택이 새로운 개체를 만들듯 자연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가정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가정 하에 다양한 생물의 종들에 대한 기원을 풀어나갑니다.

그 중 하나가 그 유명한 ‘생명나무’입니다. 자연에겐 선택하는 능력이 있으며 ‘자연선택’의 과정이 오랜 시간 반복되어 변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자연선택’의 결과 단순한 생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이 나타났다는 정말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종의 기원’을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번역하는 작업을 두 분 교수님이 했습니다. 한 분은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서울대 재직 중인 진화학자이시고, 또 다른 한분은 그분에 비길만한 진화론자인 생물학자로 유명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합작품입니다.

이 두 분의 이야기가 걸작입니다. 한편으로 어이없고 헛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 덕에 자연에 대한 문맹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인간이 생명의 중심이 아니라는 아이디어도 종의 기원으로부터 얻게 되었다 말합니다.

생명나무 이야기를 곁들이며 침팬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약600만 년 전 쯤 침팬지와 사람은 서로 다른 생명나무 줄기로 진화하여 침팬지와 인간은 사촌쯤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인간을 겸허하게 했다고 결론을 짓는데 헛웃음을 짓게 합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평생을 연구하여 진화학자가 되었고 평생을 대학 강단에서 진화론에 기초한 생물학을 가르쳐온 두 분의 학문적 업적에 비하면 존재하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빈약하기 짝이 없지만,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의 핵심 논제 가운데 과학으로 증명해 낼 수 없는 수많은 가정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껏 수많은 생명 가운데 서로 다른 종 사이에 중간 종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생명나무 이야기를 지극히 과학적인 양 설득하는 모습이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등을 돌리고 스스로 인간존재의 근원을 밝혀보려는 몸부림이 처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세기 1장만 보아도 금세 알 수 있는 단순한 생명의 진리를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과학이라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도구를 사용하면서 수많은 가정들을 과학과 버무려 놓고 그것이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었다고 하니 한편 기가 막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 앞에 겸허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 말씀에 귀를 닫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그 분들이 아무리 유명한 학자들이시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