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며칠 전 전남 영암에서 있었던 한 가정폭력 사건은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사건입니다. 36살 한국인 남편이 30살 베트남출신 아내를 2살짜리 아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한 사건입니다. 전치4주의 진단을 받았으니 몸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을 터이고 정신적으로는 거의 죽었다 살아온 기분일 겁니다. 부모와 정든 고국을 떠나 남편 한 사람을 의지하여 타지에 온 베트남인 아내는 2살짜리 아들 앞에서 그 남편에게 구타를 당할 때 말로 다할 수 없는 모멸감과 두려움에 사로 잡혔을 겁니다. 경찰에 구속이 된 남편의 변명은 치졸하기 짝이 없습니다. “말이 안 통해 화가 나서 때렸다.”는 변명은 소위 동네 양아치들이나 할 법한 말입니다. 애초에 베트남 여성을 아내로 맞이할 생각이었으면 언어의 장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결혼까지 하여 2살짜리 아들이 있었을 겁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워 의사소통을 하려면 몇 년은 부단히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게 무자비하게 아들이 보는 앞에서 한국말이 어눌하다고 아내를 무참하게 폭행을 했다는 것은 남편의 자격을 이미 잃어버린 것이고 사람다움이 죽은 겁니다. 어떻게 이렇게 준비 안 된 사람이 외국인 아내를 맞을 생각을 했는지 기가 막힙니다. 드러나지 않은 이와 유사한 가정폭력이 얼마나 많을지를 생각하면 현기증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남성에게 부여한 힘은 깨어지기 쉬운 그릇인 아내를 보호하고 지켜내라고 몸 가운데 담아주신 것인데 그 힘으로 가장 소중한 그릇을 이렇게 깨뜨리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한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의 참전에 대한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는지 모르지만 암암리에 퍼져있는 한국군 참전용사들이 월남에서 저지른 만행은 역사의 아픈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말하자면 고의로 만든 이야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언젠가 이 문제를 다룬 모 방송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일본 위안부 문제에 핏대를 올리기 전에 먼저 베트남에 사죄를 하는 것이 수순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트남에 어느 마을에는 아예 한국인에 대한 분을 풀지 않고 아예 ‘한국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붙여 놓은 모습을 보면서 한국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 가득했었습니다. 몇 년 전 한국의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하여 전쟁으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죄송한 마음을 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말로 베트남의 아픈 마음들이 얼마나 치유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이번 전남 영암에서 벌어진 베트남 아내 폭행사건은 베트남 사람들의 상처 난 곳을 다시 덧나게 하고 말았습니다.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방한 중인 베트남 고위직 인사에게 유감의 뜻을 표했지만 이런 모습은 부러진 다리에 파스 한 장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결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입니다. 한국인들이 이룬 가정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여전히 가정폭력이 끊이지 않고 아동학대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폭력의 대물림을 한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손에는 최신 핸드폰이 들려 있는데 온전하고 건강한 가정을 위해서는 여전히 미숙하기 짝이 없는 결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 온전하고 건강한 가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책 한권도 읽지 않는 위험한 결혼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민족 복음화는 구호로 외치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 이룬 가정들을 온전하고 건강하게 지켜내는 것이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 귀한 가정에서 건강하게 자란 우리 아이들이 이 위태로운 다음세대를 지켜낼 유일한 대안입니다. 주의 말씀과 함께 온전하고 건강한 가정을 향한 주의 부름을 날마다 사모함으로 우리 모두의 가정에 임하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진정한 행복이 넘치는 가정들로 세워져 가길 소망해 봅니다. 평안하신거죠. 예수 안에서.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