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지난 주간에 40년 지기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신학대학원 동기 목사님인데 제자들 가운데 신학대학원을 가기 위한 추천서(우리 대학교회가 중앙대학교 교목실을 통해서 학교기관으로 있을 때에는 교단가입이 허용이 되지 않아 추천서를 써줄 수 없었기에)가 필요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짐을 져준 형제입니다. 여러 제자들의 추천서를 부탁을 하여 늘 빚진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마침 ‘헤이리’에서 열리고 있는 ‘흰돌 전시회‘에 가는 길목에 있어 차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잠시 서로 이해를 달리한 대화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저녁때만 되면 전부 노인들이 다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해요” 그 목사님 사모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대꾸를 했습니다. “그렇지요. 나이든 부모가 안 도와주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없으니요” 이 말을 들은 목사님 부부의 표정이 부자연스럽습니다. 뭔가 대화가 엉긴 게 분명합니다. 사모님은 노인들이 저녁 무렵에 산책을 시키려고 끌고 나온 소위 ‘반려견’이야기였고, 저는 손자손녀를 데리고 자식들 마중을 나온 모습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대화가 핀트가 맞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꺼낸 분이 사모님이셔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집에서 키우는 ‘별’이라는 반려견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나이가 14년 7개월인 푸들 종 강아지였습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이미 나이가 70을 훌쩍 넘긴 나이입니다. 곁에 있는 목사님이 곁들입니다. 작년에 종양수술을 받은 후 부터 몸이 부쩍 쇠약해 졌다고 말씀하는데 저는 강아지도 그런 병에 걸리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어진 이야기가 더 신기했습니다. 허리 디스크가 와서 잘 걷지를 못하면서 뒷다리 근육이 다 빠져 지금은 아예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네 발로 다니는 짐승이 허리 디스크에 걸린다는 말은 더 신기했습니다. 잠시 후 더 신기한 이야기를 하는데 믿기지 않았습니다. ‘별’(그 목사님 댁에서 키우는 반려견 이름)이 앓고 있는 병을 위해서 백방으로 치료를 다 해 봤지만 별 효과가 없어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그날 오후에 인천에 있는 어느 병원을 가려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은 한방 병원으로 개침(개에게 놓는 침술)을 기가막히게 잘 놓는다고 소문이 나서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당일 진료를 받지도 못한다는 말에 흡사 TV 프로그램 가운데 ‘세상에 이런일이’ 현장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이런 돌봄으로부터 소외된 이웃들이 상당할 터인데 사람들이 속된 말을 쏟아내면서 하는 말이 현실이 된 모습입니다. ‘개만도 못한’ 도덕적으로 불량스러움에 대한 말로 주로 쓰이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삶의 질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허리가 곱사등처럼 휘어진 노인들이 폐휴지를 한 가득 싣고 땀을 흘리며 고물상을 들어갑니다. 나올 때 꼬깃꼬깃한 오천 원짜리 한 장을 주머니에 넣고 말입니다. 아는 목사님 딸이 키우는 강아지가 털실을 삼키는 바람에 수술을 했는데 3백 만 원이 들었다는 말에 공연히 서글퍼졌었습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노인들의 고독사가 늘어가면서 그 외로움의 자리에 죽을힘을 다해 키워낸 자식들의 자리에 주먹만 한 강아지들이 놓여 있습니다. 노인들의 병치레도 만만치 않은데 그 강아지들도 이렇게 병치레를 하면서 외로움에 안쓰러움이 더해지고 말았습니다. 반려견이 주는 긍정적 요인이 많습니다. 그 반려견에 쓰는 관심과 사랑의 반이라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으로 산다면, 베풀며 행복하고 받으며 위로를 받을 것 같습니다. 사실 ‘반려견’이라는 말도 아직까지 생경스럽기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반려는 너와 나이기 때문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