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에

지난 목요일 아침, 인터넷에 올라 있는 기사에 달린 그림 한 장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지난 5월 29일 지구 반대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관통하여 흐르고 있는 다뉴브(도나우)강에서 침몰한 허블레아니호를 인양한 후 선체 내부를 수색하던 구조팀이 발견한 2구의 시신의 모습을 스케치 형식으로 그려놓은 그림입니다. 그 배에 오른 여행팀 가운데 유일한 미성년자였던 6살 난 여자아이를 50대 후반의 여성이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스케치한 기자도 구조팀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듣고 상상하여 그렸을 터인데 그 그림에 담긴 모습이 너무 처연하여 순간 코끝이 시큰거립니다. 사고 후 여러 날 동안 33명의 사연이 여러 모양으로 보도가 되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안타까운 사연이 자신의 딸을 키워준 부모님과 딸을 동반하여 여행을 떠난 30대 엄마의 사연이었습니다. 손녀딸을 돌봐주고 키우느라 그동안 수고한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여행이 이렇게 3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기에 그 사연을 들은 이들마다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었습니다. 어느 죽음인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사연 때문에 사람들의 심금을 움직였을 겁니다. 그런데 인양된 배 허블레아니호를 수색하는 구조팀이 발견한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 앞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담아 놓으신 사랑의 숭고함을 보고 그 앞에 할 말을 잃었을 것 같습니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면서 할머니 무릎 위에 앉아 재잘거리며 귀염을 떨던 아이가 흔들리며 물속으로 가라앉던 그 7초 동안 할머니는 본능적으로 강아지(할머니들이 귀여운 손자, 손녀를 부를 때 이렇게 부릅니다.)를 부둥켜 앉았을 겁니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차오르는 물 앞에 6살 된 손녀딸을 할머니는 더욱 강하게 붙잡았을 것이고 이런 급박한 위기 상황 가운데 인간의 또 다른 본능은 살고 싶은 욕구로 자신에게 매달리는 그 누구라도 뿌리칠 것인데 7초 동안 이어지는 순간적인 두려움 앞에 떨고 있는 손녀딸을 더 강하게 부둥켜안고 앞이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두움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할머니 품속에서 물을 들이키며 사지를 떨며 죽어가는 손녀딸을 부둥켜안고 폐에 가득 차오르는 물로 인하여 의식을 점점 잃어가면서도 외할머니는 손녀딸을 밀쳐내지도, 손을 놓지도 않았습니다. 이 스케치 사진과 사진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었는데 결국 이 글을 쓰면서 휴지가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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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어른거려 글씨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동안 손자 손녀들과 보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러려니 했던 순간들이 가슴 터지도록 감사할 뿐입니다. 6살 난 손녀딸을 끌어안고 칠흑같이 어두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 분이 못다한 삶을 항상 감사함으로 덤으로 주어진 인생인줄 알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입니다. 혜민이가 보고 싶습니다. 지금 곁에 있다면 아무 것도 모를 혜민이를 무작정 끌어안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한참을 울 것 같습니다. 주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실로암 망대가 쓰러져 깔려 죽은 사람들이 바리새인들보다 죄가 많아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의 주인은 결코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런 아픔을 통해서 또 배웁니다. 이렇게 또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가야 할 이웃들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주의 위로하심이 저들에게 있기를 이 모든 일을 아시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할 뿐입니다. 이렇게 살아 있음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감사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줄 알면서도 오늘은 먹먹한 가슴을 안고 무조건 감사할 뿐입니다. 살아있음에 말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