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악의 뿌리

이번 주일 설교(가족)를 준비하는 중에 인터넷에 오른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강남에 있는 교인수가 2만명에 이르는 초대형교회에서 수백억대의 헌금을 둘러싸고 현재 담임목사측(이렇게 말하는 것도 슬픈표현입니다.)과 원로목사측(마찬가지로 이런 표현을 써야하는 현실이 아픕니다.) 교인들이 서로 호신용스프레이와 소화기를 사용하면서 집단 패싸움을 해서 경찰이 나서서 진압(진정을 시켰다고 표현하는 편이 좋을 것 같지만)을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가족인, 같은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이 성도답지 않게 잡배들처럼 패싸움을 벌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인터넷기사에 올라있는 것을 보면 틀린 기사는 아닌가봅니다. 사실 교인수가 수 만 명에 이르는 대형교회가 갖고 있는 순기능은 생각이상으로 많습니다. 작은 규모의 교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상상이상으로 많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순기능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선교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구제입니다. 물론 이런 대형교회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선교나 구제가 너무 과하여 이질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대형교회들이 선교나 구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입니다. 선교현장에서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선교사들 입장에서는 대형교회의 막강한 재정지원이 절실할 겁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순기능은 기사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이와 같은 일을 하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 사회가 교회의 이와 같은 순기능에 대하여 주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대형교회의 반사회적인 모습은 벌떼처럼 관심을 보여 대서특필하여 기사를 쏟아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강남에 있는 초대형교회에서 수백억의 비자금을 둘러싸고 교인들이 패싸움을 벌였다는 것은 기사거리에 목말라있는 기자들에게 맛난 반찬거리입니다. 패싸움을 벌인 교인들이 서로 맞고소를 하였다니 경찰의 조사가 있을 것이고 결국 법정 싸움으로 비화가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날 것이고 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겠지만 한국교회 90%를 차지하는 수십명의 교인들을 품에 안고 묵묵히 목자의 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목회자들과 그들을 존경하고 사랑으로 따르는 교우들이 너무도 큰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아셨는지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단단히 일러주었지만, 분명히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수백억의 비자금이 사실이라면 그 앞에 이런 말씀은 허망하게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진리인 것이 분명합니다. 호신용스프레이를 뿌리며 소화기를 쏘아대는 교인들은 돈 문제가 없었다면 주 안에 서로 사랑하며 섬기고 배려하는 ‘가족’들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 가족해체의 뿌리는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의 균열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물신주의가 예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슬픈 현상이 이번에도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모습에 우리는 예외인 것처럼 정죄에 열을 올리는 것에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수백억이 걸린 문제의 이해 당사자라면 우리는 호신용스프레이를 내 던지고 그 수백억을 기꺼이 포기할 마음이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소화기를 쏘아대는 그들만 죄인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그런 죄인들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갈2:20을 날마다 붙들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고백으로 살았던 사도 바울의 족적을 밟지 않으면 우리도 그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어느 호신용스프레이가 효과가 더 있을까’를 고심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일 겁니다. 가족이 이렇게 서로 다투고 싸우는 모습에 쾌재를 부를 세상 앞에 또 약점을 잡혔으니 우리 아이들이 준비하는 5월 MT 전도집회가 걱정입니다. 그래도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들을 부르실 주님을 기대해 봅니다. 주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기에 말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