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

지난 주간에 비슷한 시기에 중앙대학교에 입교(교수임용)하신 교수님들과 강원도 양양, 고성을 다녀왔습니다. 지난겨울에 약속한 날짜에 모임을 가졌는데 공교롭게 며칠 전에 있었던 산불피해 현장을 고스란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 살면서 그 지역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어느 교수님이 자신의 핸드폰에 담아 놓은 화재당시 상황사진을 보여주는데 신문과 방송으로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장면을 보면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얼마든지 볼 수 있었습니다. 양양과 고성을 오고 가는 길 양편에 화마가 할퀴고간 흔적이 흡사 폭격을 맞은 듯 흉물스레 놓여 있습니다. 인적은 없고 곳곳이 검은색 일색이고 외부공기 유입으로 맞추어놓은 자동차 작은 환기구를 통해서 들어오는 불냄새가 코끝에 가득합니다. 비성수기이기도 했지만 양양과 고성 일대 상점들은 거의 대부분 인적이 없습니다. 소개 받은 음식점이 수리중이어서 근처에 있는 음식점을 들어갔는데 언제나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주인이 그날 아침 기도를 많이 했나봅니다. 그 한산한 중에 갑자기 14명의 손님이 들이닥쳤으니 말입니다. 음식 맛은 별로였지만 안쓰러움에 어느 누구도 맛을 탓하지 못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산불피해로 인한 강원도 주민들의 무너진 상권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준 것 같아 좋은 마음으로 먹었습니다. 교목으로 안성캠퍼스에 내려와 아름아름 교수님들을 알아가면서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을 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 초짜교수님들이어서 나름 시간적 여유가 있어 몇 년 동안은 모임이 잘 되었습니다. 사회과학대와 산업대 교수님들이 한 그룹을 이루었고 가정대 교수님들 안에서 한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국악대와 음악대 그리고 예술대학 안에서는 애는 썼지만 결국은 결실은 맺지 못하고 몇 명의 교수님들과 가끔 만나 식사를 나누며 교제하는 정도 밖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교수님들 연륜이 쌓이면서 학교에서 보직을 맞는 분들이 늘어갔고 그 바쁨이 모임을 어렵게 했습니다. 결국 정기적인 모임은 가질 수 없게 되었고 방학 중에 다음 모임을 약속하면서 부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런 중에 벌써 세 분이 은퇴를 했습니다. 남은 분들도 3-4년 정도 남은 정도이고 막내 교수님만 10년 정도 남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 30년간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한 결 같이 잠간이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모일 때마다 예배를 드리는데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주 앞에 잘 살다가 주 앞에 서자는 말씀을 자꾸 하게 됩니다. 사실 그것밖에 들려줄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거의 대부분 손자손녀를 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박하지만 증손자를 보자고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삶의 무게 앞에 모두들 겸손합니다. 아무런 사심이 없이 30년을 함께 해온 신앙동지들의 만남이기에 이틀 동안 모여 안기만 하면 웃음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작년 일 년 동안 웃음의 양보다 많이 웃었습니다. 처음 성경공부를 함께 했던 교수님들은 20여명이 되지만 지금은 이러저런 이유로 모임을 떠나셨고 이제 10가정이 남아 천국 가는 길에 길벗이 되어 이런 소소한 행복을 나누고 있습니다. 대학교회 성도들의 삶에 이런 소소한 행복이 가득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주 앞에 서는 날까지 우리를 웃을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그 중에 신앙동지들이고 천국으로 가는 길에 길벗들입니다. 그 길벗들이 가슴에 가득한 사람들은 부요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겁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