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지난 4월 16일은 최권사님이 병원에 가셔서 그동안 받은 검사결과를 주치의로부터 듣기로 약속된 날입니다. 오전부터 권사님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수술을 받으실 수 있다는 말을 주치의로부터 들으셨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기다렸지만 수술 전에 항암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해들으셨다고 하여 대략 권사님의 병세를 가늠할 수 있기에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주의 선하신 인도하심의 은혜를 더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공교롭게 같은 날 5년 전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한 세월호 침몰 5주기가 된 날입니다. 세월의 무게 앞에 우리의 마음에 고이 간직한 아픔의 불꽃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지만 그들의 부모와 가족들 가슴에 불꽃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을 겁니다. 단지 그 불꽃을 애써 외면하려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을 겁니다. 모든 생명이 귀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등학교 2학년 18-19의 나이에 우리사회에 가득한 부조리함에 의하여 죽음을 맞아야 했던 250명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한 없이 기막힙니다. 그들의 부모의 마음이 모두 동일한 아픔으로 진저리를 치고 있겠지만 영원한 생명과 잇대어 살지 못한 채 자식들을 떠나보낸 부모의 그리움이 너무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먼저 떠난 자식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메시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안산의 몇몇 교회는 부활절 예배 시간이 다른 교회와 다를 겁니다. 그 교회 고등부를 다니던 아이들이 세월호와 함께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터질 것 같은 아픔을 삭이며 견뎌낼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영원을 잇대어 지난 시간을 살아왔기에 그들의 부모들이 드리는 부활절 예배는 한마디 한마디 기도, 설교가 남다를 겁니다. 그들의 가슴 속에 부활의 산 소망의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 권세를 깨치시고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찬미하는 성가대의 찬양소리가 그들에게는 생명의 소망의 노래로 들릴 겁니다. 지난 5년 간 아이를 먼저 앞세운 그들은 큰 소리 내어 제대로 웃지도 못했을 겁니다. 맛있는 것도 없었을테지만 맛난 것을 앞에 두면 아이들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 채 다 먹지도 못했을 겁니다. 어느 부모는 아이들 방을 1년 동안 못 들어가 봤다고 합니다. 결혼하여 독립한 딸이 결혼하기 전에 쓰던 물건들을 거의 다 두고 갔습니다. 책상이며 책꽂이에 꽂혀있는 여러 책들이며 대학 때 공부하던 화일들이 그대로 입니다. 아파트 두동 건너에 살고 있는데도 가끔 딸이 쓰던 책상에 앉아 서랍을 열어보면, 손닿을만한 거리에 있는데도 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슴 가득해 집니다. 그런데 아들, 딸을 앞세운 부모의 심정이 어떨까를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집니다. 최근 몇몇 정치하는 분들이 세월호5주기를 맞아 이런 저런 말들을 한 것이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무슨 의도로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 앞에 어떤 이유에서라도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아픔과 절망은 이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함께 울어주고 곁에 있어주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잊지 않는 겁니다. 책임자 처벌을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도 공허하긴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게 처벌을 해서 자식들이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래야 되지만 의미 없는 일들입니다. 결국은. 억울함을 푼다고, 이미 비어있는 방에서 자식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픈 가슴으로 심각한 가슴앓이를 하는 이웃들과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다하지 못하고 떠난 그들의 삶을 대신이라도 살 요량으로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 어른으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이 그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답지 못함 때문입니다. 지난 한 주간 고난주간에 지독한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250명 아이들의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며 아픈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위로의 주님의 한없는 위로하심이 그들에게 있기를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