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순간마다

지난 주중에 정말 오랜만에 캠퍼스를 걸어 사택으로 갔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로 공기가 맑고 깨끗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마스크를 쓰면서까지 걷고 싶지 않아 그동안은 어쩔 수 없이 자동차를 타고 오가야 했는데, 지난 주중에는 이렇게 걸어서 갈 수 있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안성캠퍼스 30년의 삶에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리 되었는지 기가 막힙니다. 십 수 년 전만 하더라도 안성에 있다가 서울로 가는 경부고속도로 달래내 고개를 넘으면 공기가 달랐습니다. 뭔가 메케한 오염된 물질이 섞인 것 같은 공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여 안성에서 보내는 며칠이 상큼한 청량음료 같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안성이나 서울이나 별로 다른 게 없습니다. 어떤 때에는 서울보다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안타깝고 속상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 더욱 답답합니다. 아무리 중국타령을 해도 속 시원히 해결할 방도가 없습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이 이렇게 공기오염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이미 너무 멀리 와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깨끗한 공기를 찾고 싶다고 공장을 멈추고 자동차를 폐기처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편리함이 주는 마약 같은 맛에 이미 너무 흠뻑 젖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전기자동차가 대안이라고 열을 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 전기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가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중단할 수 없는 원자력 발전소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환경에너지라고 하는 태양열이나 조력, 지력 발전으로 전기자동차를 움직인다고 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결국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숨을 안 쉴 수도 없고 코를 틀어막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진퇴양난입니다. 공기청정기가 없어서 못 팔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이것도 근본해결이 아닙니다. 공기청정기 회사에 근무하는 제자가 실제적 효과보다는 심리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하는 말이 맞는 말일 겁니다. 성미가 급한 분들은 정부는 뭐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리지만 사실 정부도 딱히 당장 실효를 볼 만한 대책이 없을 겁니다. 서해안에 태백산맥 같은 담을 쌓을 수도 없고, 화력발전소를 세우고 자동차에 자물쇠를 채워놓을 수도 없습니다. 이런 걱정 없는 곳으로 이민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지만 그들만의 대안일 뿐입니다.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물 오염이 심하여 한 동안 정수기 물과 사먹는 물로 버텼는데 공기문제는 아무리 궁리를 해도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구를 거꾸로 돌려 달라고 기도를 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계란 문제는 누구 말이 맞는지 몰라 조금 줄이면 되지만 숨은 줄일 수 없는 절박한 생존문제이기에 결국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몇 년 전 황사문제로 심각함이 찾아 왔을 때 이비인후과 병원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라고 하더니 여기에 한 술 더 떠 폐질환 환자가 늘어갈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살아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절박한 때를 살고 있습니다. 복음송 가사가 그런 의미는 아니었을 터인데 왠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정말 숨 쉬는 순간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