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네비인도하심따라 네비인도하심따라’ 찬송가 360장 ‘예수 나를 오라하네’ 후렴구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를 지리에 어두운 핸들을 잡은 분들의 모습을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입니다. 한치 앞을 예측 할 수 없는 광야 같은 세상을 늘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찬양에 담아 고백한 찬송가입니다. 낯선 곳을 찾아 가야 할 때 네비게이션은 절대적으로 유용한 기계장치입니다. 아무리 지리에 문외한인 사람도 네비게이션에 원하는 목적지만 입력하면 거의 정확히 길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계장치는 우리의 삶에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점점 지도하나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도를 볼 줄 아는가를 묻는 것이 이상한 질문처럼 여겨질 겁니다. “네비게이션이 있는데 지도를 볼 필요가 무엇입니까?” 라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보게 될 것만 같습니다. 네비게이션과 같은 기계장치가 생기면서 편리해진 건 분명하지만 또한 더불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재미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네비게이션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어딘가를 가려면 며칠 전 부터 지도책을 펼쳐놓고 목적지를 찾아보고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를 꼼꼼히 메모를 하거나 지도 위에서 사전 답사를 했습니다. 낯선 곳에 여행을 할 때에 이런 시간이 잔잔한 재미를 주었었습니다. 설렘도 있고 약간의 모험 같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이런 재미를 모조리 빼앗아 갔습니다. 편리함은 주어졌지만 삶의 정겨움과 신선한 흥분을 빼앗겼습니다. 예배 시간에 핸드폰을 받으며 화급히 나가는 모습은 이런 네비게이션이 주는 부작용보다 더 심각합니다. 예배드리는 한 시간여 조차 핸드폰을 꺼놓을 수 없는 삶은 흡사 족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친 표현처럼 들리겠지만 성범죄자의 발목에 채워진 팔찌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한 그 핸드폰은 그의 삶의 족쇄를 채웁니다. 울리면 받아야하고 메시지가 오고 갑니다. 카톡방이라는 것은 더 단단한 족쇄 같습니다. 함부로 빠져 나오지도 못합니다. 성범죄자 발목에 채워진 전자발찌처럼 말입니다. 벤처 사업을 하면서 외국에서 걸려오는 화급을 다투는 중요한 바이어의 전화를 받아야하는 중요한 상황과 같은 급한 통화에 대한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거의 대부분의 현대인은 핸드폰 족쇄에 꼭꼭 묶여 있는 모습입니다. 핸드폰이 주는 편리함은 네비게이션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심지어 군에 보낸 아들과 통화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외출이나 휴가를 나오는 아들이 별로 반갑지 않게 되었습니다. 휴대폰으로 매일 같이 안부를 들은 아들의 얼굴을 본다고 맨발로 방을 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핸드폰은 우리에게 편리함이라는 선물을 주었지만 우리에게서 ‘그리움’이라는 마음의 선물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현대인에게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이제 없어졌습니다. 그리워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버튼 몇 개만 누르면 그 ‘그리움’의 자리에 목소리와 얼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서로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재미를 없애 버렸습니다. 가슴 졸이며 몇 날 몇 달을 그리워하다가 목소리 들으며 얼굴을 보던 그 재미와 흥분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늘에 대한 그리움과 주님에 대한 그리움까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하늘에 대한 소망의 자리에 유튜브에 가득한 영상들이 장악한 건 아닌지 말입니다. 그리움을 잃어버린 이 세대가 어떻게 보면 딱해 보이는 건 공연한 걱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을 그리워하는 여러분의 그리움은 여전한거죠?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