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을 품고

며칠 전 일어난 한 사건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 무엇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30대 남성이 술에 취해 한 밤중에 택시를 타려합니다. 도로 한 가운데까지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 무모함은 그가 만취상태였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택시 운전자들이 이 남성을 자신의 차에 태우기 꺼려했었는지 쉽게 택시를 잡을 수 없었나 봅니다. 60대 여성운전자가 운전하는 택시에 타자마자 그 여성운전자에게 상서러운 말을 섞어가면서 울분을 토해냈습니다. 한 밤중까지 운전을 해야 하는 고달픈 삶을 살아내고 있는 60대 운전자가 들을 때, 손님이기에 그냥 참고 들어 넘길 만한 말들이 아니었나 봅니다. 술에 취한 아들뻘 되는 남성의 분풀이를 고스란히 당해야 한 여성 운전자와 결국 언쟁이 있었을 겁니다. 차에서 내릴 것을 말했을 것이고 술에 취한 남성은 손님이 왕인데 건방지다고 더 심한 욕지거리를 했을 겁니다. 결국 30대 남성은 그의 어머니 연배와 비슷한 여성 운전자를 폭행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운전이 불가능한 상태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단순한 분노조절장애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가 어떻게 아프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 같아, 사건을 보도한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가슴에 심각하게 울분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흡사 시한폭탄을 품고 사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 울분의 원인에 대해서는 사회학자들이 진단을 하겠지만 뭔가 원하는 대로 되어지지 않는 절망이 울분의 원인 같아 보입니다. 곧 오늘날 한국사회가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서 오는 분노가 이렇게 울분이 되었다는 분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밤중까지 핸들을 잡아야 했던 60대가 젊은 시절에 수없이 듣던 말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취하여 폭행도 마다하지 않은 그 다음세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공이 오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 노력의 자리에 ‘부모의 재력’이 있더라는 겁니다. 이와 같은 이들의 평가가 전부 맞지는 않을 겁니다. 노력의 자리를 능력 있는 부모들이 대신했다는 말이 또한 그르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사회가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라고 단정을 지어 울분을 품고 사는 것은 스스로 노력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성공에 대한 편협함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성경은 분명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했지만 이 말씀에 ‘아멘!’은 하지만 그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공을 이해하는 세속적 가치관이 이미 교회 안에 깊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과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이라는 교훈을 노력과 같이 이해를 해도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주의 말씀 의지함으로 주어진 모든 기회에 최선을 다하여 주의 영광 위하여 살고자 하는 자에게 주님은 언제나 세상이 말하는 ‘부모’의 자리에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부모의 재력’은 없을지라도 주의 동행하심이 있음에 우리는 울분이 아닌 감사함을 채워 살 수 있습니다. 이 아픈 세상에서 유일한 치료약이 복음 밖에 없음을 더욱 보게 됩니다. 바울의 소명의 말씀 사도행전20장 24절 말씀을 다시 마음에 담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