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두 주 전 ‘미친짓이라고?’라는 제목으로 묵상을 위한 기도제목을 썼었습니다. 인구절벽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우리사회의 미래의 암울함을 염려하여 결혼과 가정의 소중함을 글을 읽는 성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쓴 겁니다. 오늘 쓰고 있는 이 짧은 글은 두 주 전에 쓴 글에 담긴 마음의 연장선으로 보입니다. 며칠 동안의 휴일로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원 산책을 몇 차례 할 수 있었습니다. 산책을 하는 내내 마음이 영 불편합니다. 물론 날씨 탓도 있겠지만 판이 너무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애완견을 동반한 사람 열 명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사람이 한 명꼴입니다. 젊은 여인 두 명이 유모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고 있어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을 발견했다는 기대로 가까이 갔는데 여지없이 그 유모차처럼 생긴 것에 애완견이 떡하니 앉아 있습니다. 입춘이 지났지만 제법 날씨가 쌀쌀하여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을 것이라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불편한 심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계속된 연휴로 버려진 애완견(세상은 반려견이라 부르지만)이 많다는 신문기사는 인간의 탐욕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서서히 침몰시키고 있으며 멀쩡한 동물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넘어 분이 나게 합니다. 여름 휴가철 피서지에 버려진 강아지가 넘쳐나는 모습이 긴 연휴 때마다 반복이 되는 겁니다. 반려견이라 부르는 그 반려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무참하게 쓰레기처럼 버려버리는 인간의 잔인함과 탐욕의 민낯을 보는 듯 합니다. 하나님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결혼’을 미친짓이라 부르지를 않나, 그 ‘결혼’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가정’의 온전함의 열매인 자녀의 자리를 강아지로 채우고 있으니 불편하다 못해 부화가 납니다. ‘결혼을 미친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나, 아이를 왜 낳지 않는지에 대하여 그럴듯한 이유를 말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논리는 주장을 넘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으로 번져있습니다. 현대사회의 지나친 도시중심으로 인한 인간탐욕의 부작용이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결혼과 가정’에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에게 복을 주시면서 일러주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왜 결혼하지 않는지 그리고 자녀를 낳지 않는지를 주장하는 그들의 목소리만 왕왕 울릴 뿐입니다. 결국은 ‘인구절벽‘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대면해야 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지만 정작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국가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며 기발한 정책들을 내세우지만 도무지 살아날 것 같지 않은 모습입니다. 인간의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면서부터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갓난아이를 둔 20대 엄마가 며칠 간 게임에 몰두하느라 갓난아이가 굶어죽었다는 신문기사는 우리사회가 얼마나 아픈가를 그대로 드러낸 단적인 사건입니다. 우리사회를 치명적인 죽음으로 몰아가는 암 종양이 3기를 넘어 4기 말기에 이른 모습입니다. 북한의 핵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가정이 무너지고 있으며, 인간의 존재가치가 상실되고 있다는 것일 겁니다. 길을 지나다 아이를 보면 눈부실 정도로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고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에 온 한 생명은 우리 교회의 축복이고 우리나라 민족의 축복입니다. 우리 인생의 반려의 자리는 오직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