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이 오고, 또 한 생명이 가다.

지난 수요일 오후 2시 즈음에 출산예정일을 열흘을 넘긴 김사모가 태중의 아이가 나올 생각을 안 하고 태평이라, 유도분만을 하려한다고 기도부탁을 전해 왔습니다. 기도부탁을 해오는 전도사님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긴장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경험이 많은 부모님들이 가까이 계신 것도 아니고 오롯이 두 분이 그 힘든 과정을 감당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긴장하고 약간의 두려움이 있을 겁니다. 이때부터 수요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빼고는 자꾸만 핸드폰 문자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밤 11시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그리고 새벽 아침기도회를 가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문자 확인을 했습니다. 분명 오후4시에 유도분만을 한다고 했는데, 새벽시간에 문자를 확인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결국 먼저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직 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산모가 밤새도록 어떻게든 아이를 낳아보려고 애를 썼다는 건데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수요예배를 드리기 두 시간 전에, 예전 같은 노회에 있을 때 시찰회 서기 목사님이 가슴 철렁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몇 년 전 뇌종양 수술을 받으시고 많이 회복이 되어 다시 목회현장에서 나름 활발하게 사역을 하시던 목사님께서 위독하시다는 문자였습니다. 신학대학원을 함께 다녔던 동갑내기 목사님이고 같은 노회에서 신앙동지로 친구였던 목사님이신데, 뇌종양이 재발이 되어 지난 몇 개월 동안 치료를 하던 중이었는데 결국 위독하다는 전갈을 전해 온 겁니다. 수요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듣는 중에도 한 생명이 오려는 진통과 또 한 생명이 사그라드는 아픔이 오버랩이 되면서, 의자에 평안히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살아있는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예배 후에 산모의 소식이 궁금하여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더니, 신앙동지 목사님의 위독하다는 소식이 소천하셨다는 말로 바뀌어 왔습니다. 순간 두 가지 마음이 가슴 가득합니다. 좀 더 일해야 하는데 너무 일찍 가셨다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그간 몇 차례 수술과 항암 치료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데 이제 평안히 안식하게 되었으니 친구를 향한 다정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오후에 하랑이(김사모 태중에 있는 아이의 태명)가 우리 곁에 왔습니다. 그리고 1981년부터 38년 동안 부름 받은 목회현장에서 함께 달려가던 친구요 동역자 한명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참 착한 친구요 사심 없이 주의 교회만을 위한 열정을 보였던 좋은 목회자였는데 우리 곁에서 주님 곁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대학교회가 교단이 없어 제자들이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하려 할 때마다 발 벗고 나서서 자신의 교회 이름으로 제자들을 도와주었던 참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이미 이렇게 그 길을 걸어간 동역자들이 꽤 있지만 이 친구는 오래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지인이 묻습니다. 왜 목사님이 뇌종양에 걸리시지요? 아마 그 목사님은 지난 수년간 주 앞에 수없이 이 물음 앞에 많이 울었을 겁니다. 그 주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없기에 말입니다. 2018년 비슷한 아픔을 경험 했기에 남은 날들에 대한 주님의 뜻과 허락하심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까운 친구 목사님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강건함을 기원하면서 작은 소망이지만 은퇴하는 날까지 아프지 말자고 말입니다. 유치하고 입바른 말 같은 줄 알면서도 보냈습니다. 입바른 말이 아니기에 말입니다. 우리 모두 남은 날들이 얼마인지 아는 이 없지만 주어진 기회와 시간 가운데 언제나 감사와 최선으로 삶을 다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오고 가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