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

지난 주중에 북한의 김정은이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2차 만남을 줄다리기 하는 시간에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습니다. 외교 전문가들이 저마다 김정은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하여 여러 다양한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계속 미적거리는 트럼프를 향한 압박용이라는 말도 있고, 중국의 개입으로 김정은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얻어내려는 것을 좀 더 수월히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두 나라의 이해관계에서 나름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이런 만남이 성사가 되었을 겁니다. 아이러니 하지만 중국의 시진핑이 점점 북한의 김정은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의 주석들과는 달리 흡사 절대군주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 권력을 3대째 세습하고 있는 북한의 체제를 통해서 뭔가를 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국제사회에서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는 김정은에게는 중국의 시진핑이 든든한 후견인처럼 느껴졌을 수 도 있습니다. 이들의 이런 만남은 여전히 팽팽한 긴장상태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에는 피곤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금방이라도 풀어질 것 같았던 북한의 핵문제와 통일에 대한 문제들이 점점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답답함 속에서도 여전히 소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진핑이나 김정은이 나름 드러내지 않은 여러 속내를 감추고 카메라 앞에서 오랜 친구처럼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 또한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있을 뿐입니다. 먼지가 쌓인 지구본을 돌려보았습니다. 지정학적으로 정말 고단한 나라일 수밖에 없는 모습에서 주님의 뜻을 묻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가깝게는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 쌓인 모습이어서 과거 역사에 이 세 나라를 빼면 역사구성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민족성이 착해서(?) 그런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먼저 침략을 하거나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외세의 도전과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던 힘들고 어려운 역사가 빼곡할 뿐입니다. 거기에 좁은 땅 안에서 삼국이 갈라져 아웅다웅을 했고 결국 외세의 개입에 의하여 분단된 나라로 7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지구본을 돌려보다가 호주나 뉴질랜드가 은근히 부럽기까지 합니다. 그들에게도 우리들이 모르는 힘든 역사가 있었겠지만 우리나라만큼 힘들지는 않았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넉넉함과 느긋함을 놓치고 늘 빨리빨리를 외치며 살아온 모습이 과거 역사의 아픔을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내야 했기에 생긴 모습의 자화상 같아 공연히 씁쓸합니다. 이런 아픔이 선교한국을 일군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모질게 자란 나무의 강한 생명력처럼 한국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님들이 전 세계 여러 선교지에서 들풀처럼 강한 모습으로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태국에 선교여행을 떠난 우리들의 아이들이 이런 들풀 같은 강한 모습으로 웃자라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다음 세대 한국교회 기둥들이기에 말입니다. 다음 토요일(19일) 환한 웃음으로 공항에서 만날 아이들의 얼굴이 벌써 그립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