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함에서 허락하심으로

새해 벽두에 제자들과 지인들로부터 덕담이 담긴 문자들이 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건강하세요.‘와 같은 덕담은 다분히 의례적이지만 그래도 싫지 않습니다. 복 많이 받으라는데, 건강하시라는데 싫을 이유가 없습니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모여 예배를 드린 성도들이 함께 서로 나누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자연스레 웃음꽃이 피고 그동안 막혔던 말문이 열리는 시원함이 보입니다. 봉사부에서 준비한 간식이 조금 모자랐나 봅니다. 기분 좋은 투정이 싫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온거야.” 준비한 간식숫자 보다 예배 참석 인원이 넘어 선 겁니다. 그날 모자란 간식 때문에 맘 상한 이들이 없을 겁니다.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이었을 겁니다. 새해에는 언제나 우리 모임 가운데 봉사부 집사님들의 기분 좋은 투정을 듣고 싶습니다. “많이 준비하면 되지 무슨 투정을 하세요.”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겠지만 음식준비라는 것이 알고 보면 십 수년간의 노하우가 쌓인 정교한 기술입니다. 기술이라기보다는 아마 감일 겁니다. 올 한해 우리 모임 가운데 봉사부 집사님들의 그 노련한 감이 자주 깨졌으면 좋겠습니다. 덕담이 담긴 문자 가운데 어느 목사님이 보낸 덕담에 마음이 불편합니다. “올 해에는 ‘소원이 성취되는 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는 예언성 덕담입니다. 송구영신예배 시간 들었던 주의 말씀이 생생합니다. ‘원함에서 허락하심으로’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간구하던 모세의 간절함을 단호히 외면하셨던 주님이 두렵습니다. 소원 성취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우둔함이 두렵습니다. 우리의 삶에 한 가지 일도 우연이 없음을 믿기에 언제나 그 주 앞에 경외함으로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주께서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했습니다.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겁니다. 아버지께서 8일을 머물다 눈을 감으셨던 호스피스 병원에서 아내가 만난 어느 어머니의 눈물은 평생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30대 초반의 피아니스트 딸을 둔 어머니입니다. 미국유학을 했고 박사학위를 얻었고 한국 어느 대학 전임교수로 확정을 받고 짐을 꾸리는 중에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다가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답니다. 아픈 몸으로 한국에 들어왔으나 이미 손을 쓸 임계점을 넘어서서 결국 치료를 위한 병원이 아니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 온 겁니다. 억장이 무너져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딸이 말합니다. “엄마 울지 마,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내 피아노 연주가 필요하신가보지.” 지금쯤 그 딸은 하나님의 품에 안겼을 겁니다. 그 딸과 어머니는 얼마나 주 앞에 간절한 소원을 갖고 기도했을까를 생각하니 ‘소원성취’라는 말이 어색하고 야속합니다. 정말 고백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모두의 살아 온 날들이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우리의 소원도 아니고 원함으로 살아 온 것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주의 허락하심뿐입니다. 이를 알기에 오늘도 주 앞에 머리를 숙여 경외할 뿐입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주께서 주신 기적이기에 2019년 한 해 이 기적과 함께 삽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