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체온이 담긴 손

  오랜만에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내년이면 아흔을 바라보는 장모님께서 어깨가 불편하셔서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으시고 퇴원하셔서 셋째 딸집에 보름 정도 머무르셨기 때문입니다. 3년 전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곤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인사를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좋습니다. 초등학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면서 했던 말을 거의 평생 입에 달고 산 셈입니다. 장모님 평생에 이렇게 오래 집을 비우고 자식들 집에 머무르셨던 적이 없으셨을 터인데, 본의 아니게 셋째 딸집에 머무르셨던 겁니다. 일 년 에 한두 번 시골집에 내려가서 뵙곤 하여 속 깊은 정이 들 시간이 없었는데 보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장모님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어린아이가 되어 간다는 말처럼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에 약 드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수술한 어깨의 재활을 위한 운동을 자꾸만 마다하시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합니다. 간호원 출신인 셋째 딸이 이를 가만 두고 볼 리 없습니다. 잔꾀를 부리시면서 자꾸만 운동을 피하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를 셋째 딸이 야단(어머니를 사랑하는 딸만이 할 수 있는)을 치면서 재촉을 합니다. 이런 모습에서 셋째 딸의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좋은 향기처럼 집안 가득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분명 어머니와 딸의 다툼 같은데 그 안에 정겨움이 넘쳐납니다. 수술 후에 편안하시지 않아 집에 머무르신 보름 정도의 시간 대부분은 잠깐의 걷기 운동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침대에서 누워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께서 떠난 3년 동안 비워져 있던 곳이 채워진 것처럼 집이 꽉 채워진 느낌입니다. 흡사 3년 동안 퍼즐 조각 가운데 하나가 비워져 있었는데 맞는 조각이 맞춰진 느낌입니다. 비록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도,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여전히 그렇게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합니다. 이런 푸근함이 앞으로 몇 년이 주어질지 알 수 없지만,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에 가장 소중함을 그 보름동안 다시 보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회복 중에 있는 아내가 안쓰럽지만 평생에 이렇게 어머니를 집에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축복으로 여기며 지극정성을 다하는 아내가 고맙습니다. 아내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이기에 말입니다.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에 다녀왔습니다.”라고 소파에 몸을 맡겨 앉아 계신 어머니의 손을 잡을 때 그 따뜻함이 너무 좋습니다. 3년 만에 그 따뜻함의 행복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잔주름과 깊은 주름이 가득한 장모님의 얼굴의 주름들이 7남매를 그렇게 잘 키워내신 하나님이 주신 훈장처럼 보입니다. 아내가 들려주는 복음에 그래 믿어!”라고 응대하시는 모습이 기적 같습니다. 그 믿음을 긍휼히 여기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맛난 반찬을 넘어 어떻게든 어머니 가슴 속에 복음을 단단히 심어드리고 싶어 애쓰는 아내의 모습이 산을 넘는 자의 아름다운 발 같습니다. 침대에 누워 계시면서도 손자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어 늘 어머니의 사랑으로 염려하시는 모습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거울입니다. 오래토록 그런 사랑을 볼 수 없는 한계를 넘어 주 안에 영원한 사랑을 약속 받은 우리 모두는 주님께 너무나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기에 말입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이 그럼으로 우리 인생에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 안에 영생이 있기에 말입니다. 따뜻한 체온이 담긴 어머니의 손이 준 행복은 꽤 오래 갈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계셔 주셔서. 샬롬!